[현장에서]금감원장이 말한 '약탈'…적절한 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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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2.20. 오후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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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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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리스크 고려없이 이익만 챙기는 행태
점포축소·상여금 확대지급은 '약탈'로 보기 어려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진단 및 향후과제 세미나’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지난 17일 기자들 앞에 선 이복현(사진) 금융감독원장은 평소보다 말이 느렸다. 기자들 질문에 즉답을 피했고 발언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담았다. 은행권을 향해 몰아치는 악화한 여론을 의식한 듯 신중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약탈적’이란 단어가 두 차례 나왔다. 은행의 영업행태를 문제 삼으면서다. 17분간 이어진 질의응답은 ‘약탈’에 모두 가려졌다.

금융권에서 약탈은 통상 ‘대출’, ‘금융’과 어울려 ‘약탈적 대출’, ‘약탈적 금융’으로 쓰인다. 리스크는 고려하지 않고 차주(대출자)에게 제 소득으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돈을 빌려주는 영업행태를 꼬집을 때다. 차주가 나락에 빠져도 금융회사는 담보물 회수 등을 통해 이익을 챙길 수 있으니 차주의 상환 능력은 관심 밖이라는 비판 논리가 약탈이란 말에 담겨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을 “차주에게 불공정하고 남용적인 대출 조건을 부과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원장이 정확히 이러한 의미로 ‘약탈’을 말한 것인진 불분명하다. 그는 “약탈적으로 볼 수 있는 비용절감”, “약탈적으로 볼 수 있는 영업”이라고 했다.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전자의 약탈은 취약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점포 축소, 후자는 ‘소비자 잉여(효용)’를 고려하지 않은 금리 산정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설사 이게 그의 발언 취지였더라도 약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약탈은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이 금융권을 질타할 때 단골로 나온다. 등장만으로 금융권을 벌벌 떨게 했던 정치인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취임사에서 약탈을 내뱉을 때도 그는 간접화법을 썼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일각에선 ‘약탈적 대출’이라는 주장까지 제기하는 상황입니다.” 이마저도 대상이 은행은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탈적 대출 규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금융위원회가 문 정부 시절 보도자료에 약탈을 집어넣은 것은 소비자보호와 관련해서 네 차례뿐이었다.

국민 다수가 은행의 영업 행태가 약탈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발언에 신중했어야 했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금감원 모든 부서에 전달된다. 원장 발언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취지를 살피고 감독·검사·조사 방향을 정한다. 은행권을 둘러싼 화두가 정치권으로 흘러간 마당에, 금감원이 향후 규정에 따라 점검·검사 및 제재에 나서더라도 정치적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은행에서 정말 약탈로 의심되는 행태가 적발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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