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력 확장 꼼수’ 대주주에 넘긴 CB 콜옵션, 앞으론 공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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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24. 오전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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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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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 내부.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코스닥 상장사 티사이언티픽의 최대주주 쪽 지분율이 며칠 만에 21.03%에서 26.37%로 뛰었다. 일부 전환사채(CB)의 덕을 본 결과였다. 최대주주인 위지트는 앞서 콜옵션(매수선택권) 행사를 통해 티사이언티픽이 과거 발행했던 전환사채 38억5천만원어치를 액면가에 사들인 터였다. 이렇게 확보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꾸고 추가로 장내 매수를 단행하며 지분율이 급등한 것이다. 티사이언티픽은 위지트가 전환사채를 확보한 뒤에야 ‘경영권 안정을 위한 지분 확보 목적’으로 위지트에 콜옵션을 부여했다고 공시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행태를 규율하기 위한 ‘전환사채 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을 23일 발표했다. 전환사채는 향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다.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환가액이 낮을수록 적은 돈으로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런 특성으로 인해 대주주의 지배력 확대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정부는 2021년 전환가액 ‘상향 조정’을 의무화하는 등 규제를 강화해왔다.

이번에는 콜옵션과 관련된 공시 의무를 강화한다. 현재 대부분의 회사들은 전환사채 발행 때 콜옵션 행사자를 ‘회사 또는 회사가 지정하는 자’라고만 공시하고 있다. 콜옵션을 대주주에게 무상이나 헐값으로 넘겨도 투자자의 감시망을 피해갈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특히 유상증자 등으로 대주주 지분율이 떨어진 경우 이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전환사채 콜옵션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콜옵션 행사자를 구체적으로 공시하고 콜옵션의 대가 지급 여부와 금액 등을 알리도록 할 방침이다.

이른바 ‘좀비 전환사채’에 대한 규율도 마련했다. 일부 회사들이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전환사채를 다시 사들인 뒤 대주주에게 재매각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처다. 이때 재매각은 사실상 신규 발행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신규 발행에 비해서 시장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금융위는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전환사채를 발행회사가 취득할 경우, 취득 사유와 향후 처리 방법을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전환가액을 과하게 낮추는 ‘꼼수’도 차단한다. 현행 규정은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돼도 최초 전환가액의 70% 밑으로 내려가지는 못하도록 하고 있다.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받았거나 정관상 예외적 사유에 해당할 때만 70% 미만으로 조정할 수 있다. 금융위는 정관상 전환가액 한도를 벗어날 수 있는 사유로 ‘자금 조달’ 등의 일반적 요인을 규정해둔 회사들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으로는 건별로 주총 동의를 구한 경우에만 70% 밑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이번에 발표한 내용은 대부분 규정 개정 사안으로, 금융위는 올해 상반기 안에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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